5.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 파스칼 VS 데카르트
인문학의 탄생과 인문정신의 숙명
1. 중세시대는 종교의 시대였음에도 사랑과 은총으로 넘쳤던 시대라기보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억압과 살육의 시기였다.
2. 종교는 신으로 상징되는 초월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다. 하여
- 인간은 중심이 아닌 주변적인 존재로 격하됨.
- 즉, 신에게 빛이 비치면, 인간은 어둠의 자리를 차지함.
- 전지전능 한 신 → 맹종과 맹신 + 신의 편에 서 있기에 진리를 알고 있다는 독선 → 타인의 생각을 부정.
3.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 다시 태어남을 의미, 다시 태어난 주체는 '인간'
- 신과 그것의 본성을 다루는 신학 대신, 인간다움과 그것을 숙고하는 인문학이 탄생하게 됨.
- 르네상스 시대 이후, 서양 근대사회의 인문학은 인간을 넘어서는 일체의 초월적 가치들(종교, 정치권력, 자연의 힘 등)에 대해 일정 정도 회의적인 자세와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게 된다.
4. 인문학적 정신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
- 일체의 초월적 가치에 대해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삶에서 마주치는 타자와 관계하려는 정신 (나와 타자 사이의 행복한 관계를 지향하는 것)
- 즉 인문학은 어떤 외적인 권위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힘으로 자유로운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5. 인문학적 정신의 소유자는 타자를 통해서만 행복할 수 있고 반대로 타자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
-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타자가 나에게 건네주는 표현을 통해 타자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인문학적 감수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 인문에는 타인의 표현을 읽어내는 동시에 자신의 속내도 표현한다는 이중적 의미가 존재한다. 하여 인문학 공부는
- 타인의 표현을 통해 그의 속내를 읽어내는 방법을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 문학, 철학, 예술작품
- 나의 삶과 정서를 타자가 오해하지 않도록 표현할 수 있는 인문학적 표현성이 필요.
6. 데카르트는 중세시대에서 자명하다고 생각되던 모든 지식 체계를 인간을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서, 확고부동한 중심 혹은 그 토대(인간)를 다시 세우려고 시도함. → 통용되는 진리들을 모두 의심할 수 있지만, 의심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나의 생각 자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코기토 or 인간 이성)
데카르트: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이다."
근대철학은 여행에서 시작되었다.
- 여행을 가는 순간, 그들은 차이, 즉 자신이 살던 공동체와 타인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 사이의 차이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런 차이에 머물면서 그들은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게 된다.
- 반성이니 성찰이니 묘사니 하는 것도 모두 여행이 발생시킨 차이에서 나온 것
여행 중인 데카르트 = 실존적 데카르트 = <방법서설>에 등장
여행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온 데카르트 = 추상화된 데카르트 = <성찰>에 등장
데카르트는 코기토를 모든 인간들에게 적용시키려고 시도함.
- <방법서설> 양식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 (......) 잘 판단하고, 참된 것을 거짓된 것에서 구별하는 능력, 즉 일반적으로 양식 혹은 이성으로 불리는 능력이 모든 사람들에게 천부적으로 동등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셈이다. → 무엇을 참이라고 생각하는지의 여부는 문제 삼지 말자고 제안함
- <성찰>에서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양식, 혹은 이성을 '코기토'라는 개념으로 정당화하려고 시도. 데카르트가 존재한다고 말한 것은 육체를 포함하는 나의 실존은 아님. '순수한 생각', '정신, 영혼, 지성 혹은 이성'을 의미. → 존재란 육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은 코기토 논증에서 도출된 것.)
→ 확실한 것은 생각이나 이성밖에 없지만, 그것이 내용이 있는 이유나 근거를 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니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내용이 없는 순수한 형식만으로 존재하는 불행한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파스칼: "인간은 허영에 물든 심정적 존재이다."
- 데카르트 = 인간을 합리적 존재, 추상적인 사유주체로 바라봄
- 파스칼 =
인간을 낙관했던 데카르트의 순진함을 조롱하면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응시했던 철학자
인간은 심정과 이성이라는 두 가지 마음의 계기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함.
- 이성 = 기하학적 정신 = 인간이라면 누구나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보편적 능력
- 심정 = 섬세한 정신 = 개체들마다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직관적 감성과 판단 능력
인간의 호오가 이성적 판단에 따르기보다 심정에 따른 즉흥적 결과일 뿐이라 이야기함. → 우리는 지성으로 무언가를 알아서 사랑하는 존재가 아니라, 항상 심정으로 무언가를 사랑해서 알아가는 존재.
우리는 남들의 시선과 존경을 한 몸에 받으려는 욕망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적인 허영이 우리 내면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미녀와 추녀가 모두 자기 나름의 허영을 가지고 살아감) = 인간은 허영의 존재
- 부유한 척, 미인인 척, 지적인 척, 좋은 집안 출신인 척, 명문대학을 졸업한 척, 이런 수많은 포즈들이 바로 허영이라는 것
파스칼이 주장하는 데는 종교적 이유가 있다. → 얼마나 자애롭고 인자하신가? 이런 역겨운 허영 덩어리를 사랑하는 신이라는 존재는.
고찰
데카르트적인 것과 파스칼적인 것
- 철학은 여행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타자와 마주치고 대화하지 않으면 철학적 사유는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반대로 신학과 같은 독단적 사유는 여행을 혐오하는 법이다.
- 낯선 곳에서 겪은 경험만큼 우리에게 회의와 성찰의 시간을 주는 것도 없다.
[데카르트]
코기토를 낳은 진정한 어머니는 바로 암스테르담.
- 그러니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바로 중세의 질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하지만 동시에 고독한 도시인들의 내면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 데카르트의 코기토에는 대도시의 번잡함, 주체의 고독함, 타자에 대한 지적인 방응 등 다양한 도시적 계기들이 함축되어 있다.
[파스칼]
근대사회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 함 + 성격적 세계라는 관점에서 관찰되는 근대인의 비참함을 응시함. → 인간은 무의식적 충동과 허영에 지배되는 기이한 존재 → 이런 비루하고 부조리한 삶의 조건에서 신마저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더 참담하겠는가 (기독교의 신을 다시 살려내려 했던 이유)
데카르트처럼 회의하고 성찰하기 위해 파스칼은 여행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그가 살았던 곳에는 근대사회가 새로운 바람처럼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여행을 통해 중세와 근대 사이의 차이를 느꼈다면, 파스칼은 자신에게 몰려드는 근대적 삶으로 양자 사이의 차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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