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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철학

철학 vs 철학 : 10장 타자는 왜 중요한가?

by 아련한 2021. 7. 22. 01:31

10. 타자는 왜 중요한가?: 버클리 VS 들뢰즈
경험론과 합리론이란 구분을 넘어서

합리론: 진리가 경험에서 도출되지 않고 우리 이성에서 가능한 것. (이성을 통해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견해)

경험론: 진리가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 (인식, 지식의 근원을 오직 경험에서만 찾는 철학적 입장 및 견향)

범신론: 신과 전 우주를 동일시 하는 종교적, 철학적 혹은 예술적인 사상체계

유아론: 자신만이 존재하고, 타인이나 그 밖의 다른 존재물은 자신의 의식 속에 있다고 하는 생각

타자성: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도외시(상관하지 아니하거나 무시함)되는 인간의 성질.

 

1. 경험론자와 합리론자를 구분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 하는 것이다. 합리론을 대표하는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가 경험론자의 측면을 지니기도 하고 경험론자로서의 흄도 합리론자로서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 라이프니츠 - 합리론자로서 모나드 이론을 통해 모든 개체를 분석명제의 주어로 파악하려고 했음에도미세지각론(우리의 일상적 지각은 미세한 지각들의 종합의 결과)은 경험론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2. 합리론적 경향과 경험론적 경향을 좀더 섬세하게 식별하기 위해서 인간의 삶이나 사유에 '타자'라는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고독은 타자를 함축하는 사건이다. 타자의 타자성에 직면하게 될 때, 그리고 그 직면이 불확실성으로 우리를 몰고 갈 때, 루리는 골방 속의 고독을 선택할 수 있다.

 

3. 그렇다면

합리론이 타자로부터 오는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내면으로 후퇴하려고 할 때 발생하는 것이라면,

경험론은 타자로부터 초래되는 불확실성을 견뎌내려는 의지를 함축하는 사유 경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버클리: "신이 보고 있기에 세계는 존재한다."

버클리는 경험론의 타당한 측면을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기독교의 초월적 신도 함게 정당화하려고 시도했던 인물이다.

 

1. 버클리의 유명한 경험론적 명제: 존재하는 것은 지각된 것이다.

→ 역으로 이것은 지각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 그렇다면 내가 볼 수 없는 주차장의 자동차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인가?

→ 그렇지 않다. 내가 지각하지 않고 있는 자동차를 지각하는 존재만 있으면 자동차는 존재하는 것이다.

→ 내가 지각하지 않는 것을 지각하는 그 존재란 바로 절대자이며 초월자인 신인 것이다.

→ 신은 모든 것을 언제나 동시에 지각하고 있다.

 

2. 결국 버클리는 신을 믿으면 우리는 존재에 대한 불안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라는 입장인 것이다.

 

들뢰즈: "타인은 내가 못 보는 걸 보고 있다."

칸트

  1. 초월론적 관념론 = '인식의 가능성의 조건' 다시 말해 인간이 인식하는 방법 자체를 해명하려고 시도한 것
  2. 모든 가능한 경험에 적용되는 주체의 인식 능력에 주목.
  3. 카메라에 비유

 

들뢰즈

  1. 초월론적 경험론 = '경험의 가능성의 조건'을 해명하려는 시도
  2. 경험 자체, 다시 말해 대상과 주체 사이의 마주침과 그 효과를 사유하려고 한다.
  3. 바이러스에 비유 = 생명체 안에서 살게 되면 보통 생명체처럼 자신을 복제하지만, 홀로 있게 되면 그냥 핵단백질로 존재한다. 즉 생명체와 마주치는 경험이 이루어져야 생명체로 생성된다. → 인간 혹은 주체도 사건이나 타자와의 마주침에 의해 생성된다.

 

사건과 타자는 초월적인 불변하는 주체의 존재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쟁을 겪기 전후가 같을 수 없고, 사랑에 빠지기 전과 후가 같을 수 없듯이)

이렇게 사건과 타자는 우리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를 생성으로 이끈다. 이것이 들뢰즈가 말한 내재성이다. 결국 내재성이란 사건, 타자, 그리고 주체가 서로 연결되어 생성되는 역동적인 장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 우리 삶에서 타자란 얼마나 커다란 축복이자 선물인가? 만약 타자가 없다면 나는 과거의 한 시점에 매몰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고찰
타자에 대한 신뢰, 그것은 목숨을 건 모험!

1. 신을 배제하고 출발했던 근대철학은 절대적 타자가 아니라 상대적 타자의 문제를 떠맡게 된다.

 

2. 우리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없다. 따라서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을 보충하고 보완해줄 타자가 필요하다.

 

3. 결국 나의 세계가 완전하려면 타자는 진실만을 이야기해야 한다. 진실이 아닌 이야기를 한다면 나의 세계는 불완전해진다. (신이란 절대 타자를 발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타자를 완전히 불신할 수도 없다. 이 경우 우리의 세계는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유아론적으로 폐쇄될 테니 말이다.

→ 그래서 타자의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강력한 믿음이나 애정이다. 어쩌면 '모험'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4. 세속적 타자는 의도성의 여부를 떠나 항상 나의 믿음을 저버릴 수 있다. 타자의 타자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5. 세속적 타자의 말을 믿는 순간, 우리의 신뢰는 배신당할 수도 있고, 보답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배신이든 보답이든 그것은 모두 신뢰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 → 이것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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