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물자체는 존재하는가?: 칸트 VS 니체
하나의 생명체가 죽으면 하나의 세계가 사라진다.
인간이 보는 세계와 뱀이나 박쥐가 보는 세계가 같을 수 없다.
이는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세계는 존재할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인간에게 자기 나름대로의 '세계'가 있고 뱀에게도 자기 나름대로의 '세계'가 있으며 박쥐 또한 마찬가지다.
각각의 종마다 객관적인 세계가 따로 존재하며
인간은 인간을 벗어나는 종의 세계를 알 수 없다.
또한 같은 종 내에서도 유사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동일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개체는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고, 그들은 자신의 세계를 넘어서 다른 세계를 마음대로 가질 수 없다.
즉 이는 한 생명체의 탄생이나 죽음은 한 세계의 탄생이나 혹은 소멸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무엇인가 외부에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 칸트다.
칸트: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바깥에 존재한다."
1. '인식이 대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인식을 따른다' 칸트의 통찰
둥근 사과를 예로 들자면...
• 칸트 이전에는 둥근 사과의 본질이나 존재를 묻는 것이 철학자의 임무.
• 칸트는 우리의 인식 능력이 없다면 둥근 사과는 존재할 수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 우리에게 눈이라는 감각기관 + 둥긂이란 개념이 없었다면 눈앞의 대상을 '둥근 사과'라고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 즉 '둥근 사과'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발적인 인식 능력에 의해 구성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2. 우리와 무관하게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사물 = 초월론적 대상 = 물자체
태양을 칸트의 입장에서 보자면...
• 우리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고 인식하는 태양은 결국 우리 인식이 구성한 것.
→ 무언가를 우리가 구성했다면 우리의 구성과는 구별되는 무언가가 존재(태양 그 자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태양과는 무관한 태양 그 자체를 '초월론적 대상=물자체'
=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고 인식하는 태양 = '현상'이자 '표상'이고 '현실적 대상'이다.
= 태양 자체는 지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초월론적 대상=물자체'을 의미한다.
3. 우리의 현상 세계 혹은 표상 세계란 것은 우리의 인식 능력과 "자체적으로 주어져 있는" 물자체와의 마주침의 결과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 그리고 초월론적 대상은 우리의 인식을 촉발하지만, 우리는 현상 세계를 넘어서 있는 초월론적 대상을 인식할 수 없다.
4. 물자체가 우리의 감성을 촉발해야만 한다. 만약 물자체에 의해 촉발되지 않는 다면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한 표상도 가질 수 없다.
(인간에게는 감성과 오성이란 인식 능력이 있고,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인식은 불가능.)
니체: "우리가 느끼는 세계만이 존재한다."
현상 세계가 우리의 인식과 실체의 세계가 마주침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라면,
물자체는 단지 사후적으로만 생각되는 것인가? 즉 현상세계가 존재해야만 우리는 그 물자체의 세계를 생각할 수 있는가?
→ 그렇다면 물자체는 불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결론에 니체는 이른다.
1. 물자체의 존재란 우리 경험을 통해서 사후적으로 추상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먼저 현상 세계가 존재
- 현상 세계로부터 추상화해서 물자체나 천국 등이 만들어짐.
- 인간이 날조한 물자체나 천국이 실재이고 현상 세계는 허구라는 주장이 이어짐. (가치의 전도)
→ 실재가 허구가 되고 허구가 실재가 되는 가치의 전도가 벌어지기 때문에 니체는 현상세계 그 자체로 긍정하자고 주장했다.
2. "이런 가상적 세계를 만들어내는 또 다른 종류들이 많이 있을 수 없는가?" 인간의 감성과 오성과는 다른 인식 능력을 가진 생물종들은 우리와는 다른 현상 세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니체는 생물종마다 고유한 현상 세계가 존재한다고 보는 입장, 즉 관점주의를 제안한다.
[마투라나]
인간의 경우 생물종 차원뿐만 아니라 개체적이고 역사적인 차원에서도 현상 세계를 가질 수 있다. 다른 생물종들은 자연사라는 거대한 시간을 통해서만 자신을 극복할 수 있지만, 인간만은 역사라는 단기적 시간 안에서도 자신을 극복할 수 있다.
니체는 하나의 해석 체계를 창조하려는 동력이 인간이 가진 '힘에의 의지'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신이 가진 힘을 약화시키거나 줄이는 해석 체계를 부정하고 , 자신이 가진 힘을 강화시키거나 증가시키는 해석 체계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물자체와 현상 세계에 대해 니체라면 어느 것이 우리 삶이 가진 '힘에의 의지'에 더 잘 부합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고찰
도플갱어, 서양 근대철학과 불교 철학
4세기 전후 인도에서 '물자체'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 이해가 안가
1. 초월론적 대상, 혹은 물자체는 타자의 타자성을 상징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 스피노자에 대한 니체의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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