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자유는 가능한가? 사르트르 VS 알튀세르
칸트의 자유를 넘어 대붕의 자유로
칸트는 자유에 대해 "한 상태를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윤리적 결단 상황에서 자신의 이성의 힘으로 보편적인 도덕 법칙을 자유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때에 우리는 자율적 주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자유롭게 만든 도덕 법칙이 진정 자유롭게 만든 것인지에 문제 삼은 것이 프로이트에서 라캉에 이르는 정신분석학이었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윤리적 고뇌와 결단은 내면화된 규범으로서 초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의 분열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하여 초자아의 내면화된 규범이나 주체가 만든 도덕 법칙이 모두 부모에게서 유래하는 기존의 사회적 의미에 사로잡혀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옳다면 자신의 실천이성의 명려에 따라 어떤 행위를 실천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 있을 수 없다.
결국 자신으로부터 시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의미체계와는 다른 의미체계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유는 새롭게 정의되어야만 한다. "새로운 의미를 생산해내서 한 상태를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능력"이라고.
새로운 의미의 생산은 기존의 의미를 뒤흔드는 타자와의 마주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를 통해 인간의 자유는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면서 자신을 새로운 주체로 변형시킬 수 있' 다는 데서 찾아야만 한다.
사르트르: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이다."
인간은 잉크병과 같은 본질이 미리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사르트르는 다른 사물들과 인간이 다른 이유를 '무'에서 찾는다. '무'라는 것은 인간에게 미리 주어진 본질이 없다는 점,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만드는 존재라는 점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인간은 본질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본질을 새롭게 만들 수 있고 또 만들어야만 하는 존재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이 현재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반성하는 존재로서 인간은 과거나 현재의 자신과는 다른 모습의 자신을 자기 의지에 따라서 결정할 수 있다.
존재 = 본질이 미리 정해져 있는 사물들, 자유가 없는 것들을 나타내는 개념
existence = 실존 = 탈존 = '밖으로' 향하는 '존재'
알튀세르: "이데올로기가 인간을 주체로 탄생시킨다."
사르트르가 인간이 사회적 구조를 만든다고 본 입장이었다면, 알튀세르는 인간이란 주체는 사회적 구조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결국 알튀세르에게 자유로운 주체란 상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알튀세르는 "모든 이데올로기는 구체적인 개인들을 주체로 호명한다"라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개인은 점차 특정한 주체로 구성되기 시작하며 결국 호명이란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 사회구조의 어떤 한 가지 배역을 맡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주체로 호명된 뒤, 구체적인 개인이 현실적으로 수행하는 생각이나 행동들에 이데올로기가 무의식적인 표상 체계로서 작동하게 된다.
표상 체계: 시각, 청각, 신체 감각, 후각, 미각의 다섯 가지 감각 양식을 사용하여 내면에서 정보나 경험, 기억을 표상하는 여러 통로
표상: 감각적으로 외적 대상을 의식상에 나타내는 심상. 이 점에서 사고에 의한 논리적, 추상적인 개념과 구별된다.
알튀세르에게 주체라는 범주는 이데올로기와 분리 불가능하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가 없는 삶을 영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억압적 이데올로기에서 해방적 이데올로기로 바뀌는 그 지점 혹은 그 순간, 우리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바로 이 순간 인간의 자유는 빛을 발한다. 바로 이 상태가 '무'의 상태이다.
고찰 노년의 지혜, 사르트르와 알튀세르의 화해
초기 사르트르는 인간에게 절대적 자유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후기에 이르러 극복되어야 하는 사회적 조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고려하기 시작한다.
사르트르가 인간에서 사회와 역사로 나아갔다면, 알튀세르는 사회와 역사에서 다시 인간에게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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