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에로티즘은 본능적인가?: 쇼펜하우어 VS 바타유]
쾌락 원리와 현실 원리 사이에서
1. 욕구와 욕망은 다른 개념이다. by라캉
- 욕구는 단순히 부족한 무엇인가를 얻으면 간단히 충족되는 것.
- 욕망은 단순한 충족을 뒤로 연기하면서도 여전히 충족을 지향하는 복합적인 감정.
2. 생명체는 식욕, 성욕 등 다양한 욕구를 느끼지만 오직 인간만이 이 욕구에 대한 충족을 뒤로 미룰 수 있다.
- 그 예로 성적으로 성숙해진 동물이나 인간은 모두 성적 결핍감을 느낀다. 하지만 동물은 그것을 미루지 않고 바로 해결하고자 하지만 인간은 직접적인 성교를 뒤로 미룬다.
3. 그렇다면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이러한 욕망은 어떻게 해서 발생하는가?
-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쾌락-자아'와 '현실-자아'가 존재한다. '쾌락-자아'는 쾌감을 지향하고 불쾌감을 피하는데 집중한다. 마치 갓난아이가 배고픔의 불쾌감을 느꼈을 때 배를 채움으로 불쾌감을 피하려는 것과 같다. '현실-자아'는 직접적인 욕구 충족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는 주체를 가리킨다. 아이가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뒤로 미루는 것과 같다.
4. 욕망은 '충족을 위한 충동(=욕구)'도 아니고 사랑을 위한 요구도 아니고, 후자에서 전자를 뺀 차이이다. -에크리/라캉-
- 제사음식을 먹고 싶은 '충족을 위한 충동'을 '사랑을 위한 요구'로 억누르면, 그때에만 우리는 제사음식에 대한 욕망이 발생한다는 것. 즉 자신의 욕구를 주체가 현실 원리를 수용하면서 미룰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 성적인 욕망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단순히 성적인 욕구를 채우는 것과는 구별될 필요가 있다.
쇼펜하우어: "생의 맹목적 의지가 인간의 성욕을 촉발한다."
1. 쇼펜하우어에게 현상 세계란 단지 맹목적 의지(무언가를 촉발하고 발생시키는 어떤 힘)가 드러난 것에 지나지 않았다.
- 감성을 촉발하는 물자체는 물론 물자체의 범주에 속하는 인간 자체도 맹목적 의제에 지배된다.
2. 쇼펜 하우에게 성욕은 정신적, 육체적 측면을 포괄하는 맹목적 의지의 실현이었다.
- 정신적으로 보면 "어떤 특정한 개인을 대상으로 해서 그 사람을 통해 성욕이 만족되면 모든 것을 얻을 것 같은"확신을 정신에 심어준다.
- 또한 신체적으로 에로티즘을 느낀 우리의 몸에 호르몬이 분비된다는 측면을 간과하지 않았다.
3. 이렇게 육체적 정신적 차원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성욕을 통해 맹목적 의지가 진정으로 실현하길 원했던 것은 종족 보존이었다. 성욕, 에로티즘, 사랑은 오직 하나의 목적, 즉 종족 보존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 이것이 쇼펜하우어의 근본적인 입장이다.
바타유: "사회적 금기가 성욕을 인간적으로 만든다."
바타유는 주어진 체계에 에너지가 들어오면 어느 정도까지 체계는 성장할 수 있지만, 에너지 유입이 그치지 않으면 체계는 폭발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가졌다. 그렇기 때문에 체계는 과잉 에너지를 외부로 배출해야 하며 그러한 수단으로써 사치, 소비, 선물의 역할을 강조했다. 생산, 축적과 같은 자본주의적 가치는 에너지를 쌓을 수밖에 없고 세계대전과 같은 과잉 에너지의 소모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바티 유는 자본주의적 '불유쾌한 파멸'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유쾌한 파멸'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1. 바타유에게 에로티즘은 소비, 사치, 상실의 가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 에로티즘은 종족 보존이 아닌 유쾌한 파멸과 관련된 일반 경제의 문제인 것이다.
- 에로티즘에 대한 고전적 인식은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구절로 알 수 있다.'사랑으로 인해 병이 듭니다. 처음에는 성교를 하기 위해서, 그다음에는 자식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2. 인간의 에로티즘은 사회적 금기 그리고 이 금기에 대한 위반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 금지된 것에 대한 선망이 성적인 대상과 관련될 때 바타유의 에로티즘이 발생한다. "유혹과 공포, 긍정과 부정의 엇갈림이 존재한다."
3. 인간에게 통제가 주어진다면 그 통제를 넘어서려 하고 이는 인간이 직접적인 욕망 대상을 갖지 못한다는 걸 말해주기도 한다. 무언가 금지되어야 강한 욕망이 작동한다면, 우리의 욕망은 이미 매개된 것이다.
- 인간에게 에로티즘은 사회적으로 금지된 짝짓기에 대한 욕망이고 사회적 '금지'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층위를 함축하며, '금지'가 역사적 차원을 띤다는 점에서 역사적 층위 또한 함축하는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고찰 다이아몬드 수레에 탄 에로티즘
육체와 섹스를 그 자체로 긍정하려면, 우리는 초월적 세계를 부정해야만 한다.
불교에는 탄트라 불교(밀교)라고 불리던 금강승의 전통이 있는데 지식인 중심이 아닌 민중 중심의 불교를 지향했다.
많은 것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감각적 쾌락과 성적 쾌락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그들은 자기만이 아닌 타자가 존재한다는 걸 배우게 된다.
나와 내 욕망이 없어질 때, 우리는 무아를 체험하게 된다. 바로 이럴 때 우리는 불변하는 자아나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섹스에서 이것은 자신보다는 타인의 쾌감을 증진시켜주려는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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